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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국 화단의 현대사 산증인 ‘최수식 화백’
‘서양화 동양화의 진수’ 화폭에 동시 구현
 
강영한 기자 기사입력  2018/11/23 [00:02]

동양화의 양대산맥인 남종화 북종화를 두루 섭렵

프랑스 영국의 유수 박물관혈마도 등 작품 소장

조선왕조 영정, 기독교 성화 폭넓은 작품활동 매진


독립운동가의 후손최수식 화백 역시 탄압의 굴레

현재 독도수호연합 상임고문! ‘독도 지킴이에 앞장

독자적 화풍 치열하게 연마 후배에게 대선배 조언

 

▲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최수식 화백은 한국 화단의 현대사 산증인이다.     © kpakyh


Q.
해산 최수식 화백은 한국 화단에서 독보적인 존재이다. 일반 독자들에게 해산 최수식 화백의 인생 역정에 따른 시대적 작품 태동을 추보식 관점에서 소급하면서 현재형으로까지 생생하게 예시하여 달라.


A. 저는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만석꾼의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 부은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나 2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으나, 배움의 학비가 없어 독학으로 공부하여 10세 때 의제 허백련 선생에게, 14세 때는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사사 받으면서 동양화의 양대산맥인 남종화 북종화를 두루 섭렵하면서 최고 경지에 올라섰다.


이후 이당의 강력한 독려 하에 서울대 서양학과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한일수교반대 학생운동에 앞장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중 프랑스로 추방되어 파리 소르본대학에 다니던 중 현대 미술사에 미증유의 사건이 촉발된 것이다. 사연을 말씀드리면, 내 자신의 몸에서 피를 뽑아 어머니의 한복속치마 인견에 생명력 충일한 말을 형상화 한 것이다. 이 작품은 현재 생존화가 중 유일하게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귀국 후에는 유학에서 공부했던 서양화와 16세까지 그렸던 동양화를 우리 소재인 광목에 한 장의 그림으로 그린 세계 최초의 동서접목화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 세계 최초의 동서접목화를 화폭에 구현시킨 최수식 화백.     © kpakyh

 


Q.
근래에 최수식 화백은 광목에 작품을 구현하는 작업을 치열하게 매달려왔다. 그 일련의 과정들은 한국 화단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A. 따라하거나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거나 애기한들 상대의 마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무엇보다도 상대의 발상이 있어서 이거다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 다음을 움직임에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고 말로 강조하지 않는 나만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답이라 생각된다.


Q. 최수식 화백은 서양화와 동양화의 패러다임을 화폭에 동시 구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데, 이에 대해 상세한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시대상과 연관하여 동양과 서양을 수렴하는 융합적 관점을 정밀하게 적시하여 달라.


A. 작품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세계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작업이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지금에 와서 지난날을 뒤돌아보니 나 자신도 모르게 이곳 저곳에서 현대미술이라는 이름하에 연구발전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기에 더한층 열심히 연구와 발전된 작품세계를 남겨야 후세에 후학들이 따라올 것이 아닌가.

 

▲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혈마도’     © kpakyh


Q.
해산 최수식 화백의 인생 역정은 한국 근대사와 현대사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부친은 독립군 투사였고 외가 역시 항일 투쟁의 뜨거운 혈통을 이어받았다. 최수식 화백 역시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수많은 역경을 견디어 냈는데!


A. 1945년 광복이 다가오니 일본의 감시와 탄압이 극에 다다를 때 만석꾼의 전재산중 마지막 토지를 처분한 군자금을 상해 독립군에게 안전하게 전달하기 위해 모친은 건곤일척의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의 형이 돌이 되기 전에 불명의 병으로 죽자, 죽은 형의 배를 갈라 그 안에 독립자금을 넣고 꿰매어 추운겨울철 아이를 담요로 싸서 자는 아이처럼 품에 안고 기차를 타고 일제 경찰의 눈을 피해 상해까지 독립자금을 전달한 일화는 장엄하게 회자되어 온다.


저는 이런 장엄한 유서 깊은 독립운동가 집안의 자손으로 대학시절 한일수교반대운동에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항거해왔다. 현재는 독도수호국민연합 고문으로 나라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 대망의 뜻을 ‘몽유겸재산수화’     © kpakyh


Q.
해산 최수식 화백이 한국 화단과 동시에 세계 화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장르적’ ‘독창적’ ‘시대 선도적관점 등 세가지 측면에서 그 위상을 생생하게 예시하여 달라.


A. 한국 화단에서는 동양화 남종화 북종화를 모두 연마하여 동양화, 인물화 및 풍경화를 자유자재로 그리며 서양화를 동양화에 접목시켜 동서접목화를 탄생시킨 피카소, 고흐에 필적하는 세계적 화백으로 평가받았다.


저는 세계미술계 31개 장르 중 7장르를 추가한 세계적인 화가로 우리나라 화가 가운데 유일하게 세계 5대 박물관에서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혈마도영국 대영박물관 미녀와 소스페인 피카소 박물관 호랑이일본 우에노 박물관 악녀미국 카네기 홀 악녀등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 힌민족의 기상과 웅비를 ‘맹호도’     © kpakyh


Q.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혈마도에 대한 배경에는 모자지간의 애절한 사연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애절하게 눈물겹게 설명하여 달라.


A. 서울대 재학 중 한일수교반대 학생운동을 하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면회 온 어머니는 말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곧 프랑스로 추방되는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안타까움에 입고 있던 한복속치마를 벗어 눈물을 닦으라고 저에게 건네주었다. 프랑스 유학중 창작활동과 학비를 벌고 생활비를 벌어야하는 고달픈 타국생활에 지쳐 생에 마지막 작품을 불사르지 않을 수 없는 처절한 상황에 이르렀다.


어머니가 주신 인견속치마를 펼쳐놓고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생각하며 의대생들이 실습하고 버린 주사기를 주워와 자신의 팔에서 피를 빼기 시작하였다. 이때 같이 수학한 등소평의 딸 등린이 평소에 자랑하곤 했었다.


중국의 황제만이 8마리의 말을 그려 걸어놓을 수 있다던 말을 떠올리면서 대한민국이 중국보다 더 힘차게 달리며 더 크게 발전하기를 기원하며 나 자신의 피로써 말 16마리를 형상화 시켜놓고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지도교수의 도움으로 급히 병원에 옮겨져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고, 교수의 친구인 루브르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을 통해 루브르박물관에 전시하게 되었다.

▲ 시련에도 의연히 피어나는 ‘매화도’     © kpakyh

 


Q.
최수식 화백은 조선왕조 영정과 기독교 성화, 불화 등 두루 작품 활동에도 폭넓게 매진해왔는데?


A. 조선완조 5대왕 영정을 그리셨고, 1984년 기독교100주년 기념 성화를 그렸다.양산 통도사, 해남 대흥사, 구례 화엄사, 설악산 백담사, 서울 조계사 탱화는 혼연일체 결실물이라 할수 있다.


덧붙여 말씀드린다면, , LP, 컴퓨터 액정 등에 폐기물을 재활용하여 그림을 구현하는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스치로폼 등 환경폐기물은 마치 태평양에 떠있는 것이 일본 섬 크기와 같다. 우리 주변에도 각종 생활쓰레기로 넘쳐나 인류에게 환경보호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환경폐기물을 작품소재로 재활용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시키는 묘책을 구사하고 있다.


Q. 최수식 화백의 맹호도는 우리 한민족에게 어떤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나.


A. 호랑이는 옛부터 우리 겨레의 설화 속에 자주 등장해 온 동물이다. 호랑이는 착한사람과 정의로운 사람을 돕고 악한 자를 징벌하는 존재였다. 이는 맹수로서의 호랑이가 지닌 무서운 힘과 경외감이 결합된 결과로서 나온 독특한 성향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용맹함과 위엄을 두루 갖춰 백수(百獸)의 왕으로 불리는 호랑이는 존경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에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 숭배사상으로 발전해서 재앙을 막아준다고 믿었다. 삼재(수재, 풍재, 화재)나 기근, 풍란 등으로부터 지켜준다는 믿음이 있어서 호랑이 그림을 벽에 걸어두기도 했다. 또한 권력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했다. 호랑이 가죽, 털이나 호피, 문신 등을 소유하고 있으면 강력한 권력과 재물, 그리고 소망하는 사업이 대성하게 되리라 믿었다.


자식의 입신양명을 위해 산방(産房)에 호랑이 그림을 붙여놓기도 하고, 기가 약한 사람에게 호랑이 뼈를 갈아 먹이는 한방요법까지 있었다.


Q. 현재 최수식 화백은 독도수호연합 상임고문을 맡고 계신데! 독도는 우리 민족에게 어떠한 상징성과 현실성을 내포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성찰해 달라.


A. 부모님 모두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셨고 만석꾼 전 재산을 이 나라 독립을 위해 바쳐 일본으로부터 독립이 되었다. 그러나 다시 독도 침략 야욕에 휘둘리게 되면, 민족의 자존심을 잃게 되고 다시 일본에게 침략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일본이 독도에 이토록 집착하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해양자원을 노린다는 주장이 가장 유력하다. 그만큼 독도의 해저는 보물창고다. 오염되지 않은 태고의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섬이다. 잘 지켜 후손 대대로 물려줘야 한다.

 

▲ 그림자 보좌하는 애제자 류신영 화백과 함께     © kpakyh


Q.
류신영 박사에게도 묻겠다. 해산 최수식 화백과 운명적 만남 이후, 최수식 화백을 그림자 같이 보좌하며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A. 해산선생의 수제자로써 우리 땅 독도 지킴이로써 독도가 우리 땅임을 널리 알리고 독도를 지켜야하는 것을 해산선생과 함께 알리고 있다. 해산 선생님의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미술의 새로운 영역에 영혼을 바치시는 모습에서 예술가의 참 모습을 보았고 독도를 지키고자 본인의 자식 같은 작품들을 재능기부하시는 모습을 뵈었을때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예술가의 길은 배고픔의 연속임을 보고 같은 길을 모시고 걸어가고 있다.


Q. 마지막으로 침체일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화단의 실상을 애정으로 감싸면서 예술문단 지망생들에게 대선배로서 냉정하게 조언해 달라.


A. 경제가 안정적으로 활성화되면 국민들이 다시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예술지망생들은 전시회에서 많은 작품에 두루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열심히 자신의 작품세계를 위해 연마하면 자기만의 독창적 차별화된 화풍을 확립하게 될 것이다. 독자들도 화백이 작품을 그릴 때 느꼈던 감정을 화백의 작품세계 속에서 동일하게 호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그림만이 진정 위대한 예술품이라 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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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23 [00:02]  최종편집: ⓒ KPANEWS한국언론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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